난치병 앓는 존스홉킨스의대 한인교수 "좌절 아닌 성장 계기로"
난치병 앓는 존스홉킨스의대 한인교수 "좌절 아닌 성장 계기로"
  • 이상서
  • 승인 2021.01.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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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영 소아정신과 담당의, 최근 가족 만나러 방한

 

난치병 앓는 존스홉킨스의대 한인교수 "좌절 아닌 성장 계기로"

지나영 소아정신과 담당의, 최근 가족 만나러 방한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온종일 환자를 진찰해도 끄떡없었고, 에베레스트 등반에도 도전했을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부했던 그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밥상을 차리는 간단한 일조차 힘에 부쳤고, 10분도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근육통과 오한에 시달렸다. 휴직계를 내고 1년을 쉬었지만 소용없었다. 2017년 병원에서 자율신경계 장애 가운데 하나인 '신경매개저혈압'과 '기립성빈맥증후군'이라는 난치병 판정을 받았다.

 

지나영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담당의. [본인 제공]

 

미국 의사 국가 고시를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해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담당의로 일하고 있는 지나영(46) 교수의 얘기다.

최근 한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입국한 지 교수는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병을 얻기 이전보다 이후의 내 삶을 더 사랑한다"며 "아프지 않았다면 평생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어 속담 중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줬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 있어요. 시큼한 레몬은 시련과 고난을 뜻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달콤하게 바꿔보라는 의미에요. 난치병을 좌절이 아닌 성장하는 계기로 삼은 이유죠."

지난해 말 투병 생활 등을 담담하게 그린 에세이집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펴낸 지 교수는 "말 그대로 난치병이기에 현재 의학으로는 완치 판정을 받기는 힘들 거라고 본다"면서도 "느닷없이 찾아온 역경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난치병이었던 만큼 병명 조차 알기 힘들었다. 10명이 넘는 의사를 만나 여러 검사를 거쳤으나 매번 정상 판정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 병은 더욱 악화됐다.

최초 발병 이후 반년이 지난 뒤 우연히 같은 병원의 한 의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가 앓고 있는 증상과 유사한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는 글을 발견해 바로 연락했고,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투병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 교수는 담담했다. 예전보다 많이 호전됐고 꾸준히 약물 치료와 정상 혈압을 유지하면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지만 증세가 악화되면 다시 입원을 해야 한다.

그는 "현재 가장 힘든 부분은 일상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의 병적인 피로감"이라며 "지금 인터뷰를 마치면 적어도 한두 시간은 누워있어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털어놨다.

병마와 싸우면서 그는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미국으로 넘어가 하버드 의과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 등을 거쳐 현재까지 20년 동안 수많은 환자와 마주했지만, 단 한 번도 그들과 같은 입장에 놓였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스스로 잘 공감하는 의사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아프고 나니까 그동안 환자의 고통을 극히 일부만 이해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나도 모르는 새 관성에 젖어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슬픔에 무감각했구나 싶었죠."

그는 "좋은 의사가 되려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아파봐야 한다는 격언이 와닿더라"며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워낙에 천성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어려움에 부닥치면 될 때까지 해보는 성격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투병 당시 지나영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모습. [본인 제공]

 

아픔을 계기로 삼은 새로운 목표는 또 있다. 이제까지 의사로서 전력투구했던 열정의 일부를 한국의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쏟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20년, 한국에서 25년을 살면서 양국 교육을 비교했을 때 우리가 부족하고 느낀 점은 아이들을 향한 '존중'이었다.

그는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가지의 개성이 있다"며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 미국은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편인데 우리는 다 비슷하다고 여기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기 맘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해야 하거든요. 아직 부모들이 자녀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서툴다는 방증이겠죠."

이달 말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그는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 원통하고 분한 게 어디 있겠냐"며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부모의 건강한 양육 방법과 아이들이 단단한 자존감을 지닐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같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병을 얻은 것은 아닐까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환자를 치료할 것이고 한국의 가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조언하는 역할도 기꺼이 맡아 하렵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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