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군부대서 관광명소로 바뀐 뉴욕섬, 이젠 기후대응 메카로
[르포] 군부대서 관광명소로 바뀐 뉴욕섬, 이젠 기후대응 메카로
  • 이지헌
  • 승인 2024.04.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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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신상 옆 거버너스아일랜드 탐방…대도시 공공부지 활용 실험무대
2028년까지 교육·연구시설 건립해 기후변화 연구의 허브로 탈바꿈 모색
군부대에서 민간개방한 용산공원과 공통점…용산개발의 벤치마킹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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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맨해튼 건물 전경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 아일랜드 '전망 언덕'에서 바라본 맨해튼 고층 건물들 전경. 2024.4.18 photo@yna.co.kr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군부대가 위치한 뉴욕의 안보 요충지에서 관광명소로, 이제 다시 변신을 꿈꾼다"

'지구의 날'(4월 22일)을 5일 앞둔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외신기자센터 초청 행사로 방문한 거버넌스 아일랜드는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요지에 확보한 대규모 미개발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시대 흐름에 맞춰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실험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랜 기간 군부대로 쓰이던 대도시 내 대규모 부지가 민간에 개방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울의 용산공원과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거버너스 아일랜드의 리게트 홀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 중심부에 있는 옛 미군 시설 리게트 홀의 모습. 2024.4.18 photo@yna.co.kr

거버넌스 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 남쪽으로 불과 800여m 떨어진 면적 약 70만㎡의 섬이다.

여의도 면적의 약 4분의 1 정도로, 맨해튼 배터리공원 인근 부두에서 페리를 타고 약 10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월가로 대변되는 뉴욕 금융중심지를 바로 마주한 요지지만, 18세기부터 군사시설로 이용돼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육군 시설과 해안경비대 기지 탓에 일반인 접근이 차단돼 뉴욕 시민 입장에선 사실상 존재감이 없는 섬이었다.

섬의 활용 가치가 떨어지자 부지 대부분을 소유했던 연방정부는 2003년 주거시설이나 카지노를 짓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이 섬을 단돈 1달러에 뉴욕주와 뉴욕시에 넘겼다.

이어 뉴욕시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재임 시절이던 2010년 이 섬에 대한 권리를 모두 넘겨받았다.

시정자들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그때부터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섬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왔다.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 아일랜드 언덕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방면 바다 전명. 2024.4.18

사람들은 이 섬이 '뉴욕 시민의 섬'이 되길 원했고, 시는 섬을 예술과 문화가 깃든 공공 공간 및 공원으로 만들어갔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공원 속에 미술 전시회, 콘서트, 재즈 파티 등 여러 문화 이벤트가 열리면서 섬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자연스레 늘었다.

100년여 전 섬의 원래 크기는 지금 면적의 절반에 못 미쳤다.

20세기 초 뉴욕 지하철(현 4∼6호선) 준설 공사로 발생한 토사를 육군 공병대가 섬 남쪽에 매립해 면적이 약 40만㎡ 늘었다.

맨해튼과 자유의 여신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섬 남단 전망 언덕도 부근에 있던 11층 높이의 해안경비대 관사 아파트를 철거한 뒤 남은 건물 잔해로 만들었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섬 한 가운데 조성된 '해먹 숲'은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조성했는데, 뉴욕 시민들이 자주 찾는 인기 명소로 떠오른 지 오래다.

언덕 아래에는 글램핑장도 마련됐다. 도심 속 매립지에 조성된 캠핑장이라는 점에서 서울 상암동의 난지캠핑장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거버너스 아일랜드 '뉴욕 기후 익스체인지' 프로젝트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 아일랜드의 '뉴욕 기후 익스체인지' 건립 부지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단의 새러 크라우트하임 부대표가 사업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2024.4.18 photo@yna.co.kr

2019년 무렵부터 거버너스 아일랜드는 뉴욕 시민의 여가공간에 더해 '기후변화 대응의 중심지'로 변신을 도모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추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단의 새러 크라우트하임 부대표는 "거버너스 아일랜드는 도시 환경에서 기후변화 해법과 관련한 실험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라고 소개했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잇달아 후퇴시키자 지방정부 차원에서 기후정책의 주도권을 잡고자 다양한 시도를 벌인 영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시는 섬의 남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제로 부지 개발 아이디어를 국제공모에 부쳤고,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컨소시엄이 제안한 '뉴욕 기후 익스체인지'(이하 기후 익스체인지)가 지난해 최종 사업모델로 선정됐다.

섬을 관리하는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단 설명에 따르면 기후 익스체인지는 기후 관련 연구와 해법 개발, 교육, 직업훈련, 공공 프로그램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2028년까지 7억 달러(약 9천600억원)를 들여 섬 남동부 부지에 교육·연구 캠퍼스 시설을 건립, 기후변화 대응 연구 및 해법을 모색하는 허브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게 기후 익스체인지의 핵심 계획이다.

섬을 길게 가로지르는 '리게트 홀'을 비롯해 현재는 대부분 방치된 섬 곳곳의 역사적 건물들도 새로 단장해 강의실과 회의장, 복합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굴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 아일랜드 101번 부두에서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의 헬렌 헤트릭 커뮤니케이션 담당 국장이 굴 암초 복원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2024.4.18 photo@yna.co.kr

기후 대응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이미 섬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뉴욕시 연안에 굴 서식지를 부활시키는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이하 오이스터 프로젝트)도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환경복원 사업이다.

오이스터 프로젝트 헬렌 헤트릭 커뮤니케이션 담당 국장은 "굴은 바닷물의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필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계 다양성을 복원시키는 역할도 한다"며 뉴욕 곳곳에서 굴 암초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단은 기후 익스체인지 건립으로 섬이 뉴욕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후 연구 허브이자 '살아있는 실험실'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라우트하임 부대표는 "뉴욕시가 아닌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단이 이 섬을 소유하고 있고, 섬 내 대부분 인프라도 재단 소유"라며 "누군가 홍수 예방 등 기후 해법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여기서는 주민 동의나 시청 여러 부서의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재단의 허락만 받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섬 시설 운영 및 관리 비용은 뉴욕시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앞으로 재정 자립도도 점차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크라우트하임 부대표는 "현재 뉴욕시가 운영예산의 75%가량을 기여하고 있는데, 시설 임차인을 늘리면서 재정 의존도를 점차 줄여가고 있다"며 "기후 익스체인지가 완공되고 나면 섬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거대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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